블로그 이미지
남태평양 바누아투에 살면서 사진과 영상으로 바누아투 소식을 전하는 블로거입니다. 자칭 바누아투 홍보대사.
by bluepango
buepango@hotmail.com 카톡ID LeeHyup

NOTICE

CALENDAR

«   2017/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Total : 2,379,416
  • Today : 94  | Yesterday : 311

Bluepango motel

In Port Vila

Read all Bluepango motel reviews

Powered by: HostelBookers


Free Translation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810)
행복한 삶 (157)
선교사 (6)
VANUATU (506)
영어야 친구 하자 (14)
Bluepango의 관심사 (66)
여행지 및 맛집 (8)
기타 (31)
사진첩 (12)
참사랑 (0)

Daum 블로거기자상 우수상 엠블럼

DNS Powered by DNSEver.com


  1. 2010.02.18
    10개의 바다 10개의 신화 - 바누아투 (5)
  2. 2010.02.10
    KBS와의 인터뷰 (행복한 삶이란?) (1)
  3. 2008.02.17
    또 명예훼손으로 고발 당할뻔 했네요. (24)
  4. 2007.11.25
    [우토로]도토리 1,000개 선물 받은 사연
  5. 2007.11.24
    오지에서 봉사하는 한국 여성 (1)
  6. 2007.11.14
    피랍자 예멘 도착-조선족의 애끓는 사연
  7. 2007.10.08
    브라질 쌈바 청년 우토로 동참
  8. 2007.10.07
    아름다운 호주 아가씨도 동참 합니다.
  9. 2007.10.06
    영국인이 한•일 정부에 쓴소리 하다.
  10. 2007.10.05
    프랑스인 우토로에 희망메세지 보내다
KBS의 '걸어서세계로' PD님이 바누아투에 오셔서 바누아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가셨습니다.

이미지 출처 : KBS

제가 로드메니져가 되어서 조금 도와 드렸습니다.
덕분에 인터뷰도 하게 되었는데요, 편집될 가능성이 많아 화면에 비춰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번에 촬영을 다녀가신 분은 설상환PD님 이신데요, 완전 프로시더군요.
혼자 오셔서 모든 것을 감당하셨고요, 일정에 많이 차질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남들이 담아 내지 못했던 것을 많이 담아가셨습니다.
특히 식인 마을에 가셔서 대추장 만나고 그 마을 사람들과 즐거웠던?#$% 아니 좀 살벌했던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그동안 여러분들이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바누아투 이야기가 될 듯 합니다.
어쩜 이 PD님은 그 부족 아가씨와 결혼을 해서 바누아투에서 영영 살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하하...^^
지혜롭게 잘 빠져 나오셨더군요. 그 이야기가 방송에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걸어서 세계로'는 그동안 바누아투 관련 방영물들 중 중복되는 이야기도 있겠지만 새롭고 재미있는 내용이 더 많을 듯 합니다.

이미지 출처 : KBS
타나섬 용암분출 장면을 찍으려고 가이드가 말려도 무작정 들어가셔셔 촬영도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일본의 NHK 촬영팀이 죽었던 장소입니다.
큰 폭발이 있었고, 후폭풍인지 돌풍인지에 쓰러져서 의식을 잃기도 해서 화산 가이드가 급히 대피시키기도 하는 불상사 아닌 불상사도 있었습니다.
그 덕에 이번 화산 폭발 장면은 아주 멋있을 것입니다.
특히 식인종 마을 탐방 이야기는 특종중의 특종이며 최초일듯 합니다.
전기가 없어서 카메라 밧데리를 충전 시키지 못하여 흥미진진한 내용들을 다 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다는데, 아뭏튼 저도 내용이 무지 기대가 됩니다.
이곳에선 생방송으로 보기가 힘들지만 저화질 방송보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꼭 보아야 겠습니다.
흥미진진한 바누아투 이야기 꼭 보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rackback : 1 And Comment 5

바누아투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요?’

KBS PD님이 인터뷰 좀 할까요? 하며, 몇 가지 질문했던 내용중의 한 가지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진행된 인터뷰라 준비한 대답도 없었고요, 평소 생각한 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바누아투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요? 전 첫 번째로 대답한 것이 그들은 욕심이 없어서라고 한 듯 합니다. 그들은 왜 욕심이 없을까요? 거기에 대한 해답은 그들은 먹거리에 전혀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누아투 사람들은 대대로 일하지 않아도 먹고 자고 입는데 전혀 문제없이 살아 왔습니다. 년중 사계절 그들이 노력하지 않아도 땅에서 바다에서 먹거리가 항상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축복 받은 사람들인지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에 반해 한국은 어떻습니까? 우린 먹거리 걱정을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먹고 살려면 봄, 여름, 가을에 열심히 일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몇 백년 동안 아니 몇 천 년간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 왔습니다.

우리들은 대대로 죽어라 일해야 했습니다. 얼어 죽지 않으려고, 굶어 죽지 않으려고그러다 보니 능력에 따라 또는 운에 따라 빈부의 격차가 많이 생겼습니다. 잘 사는 사람들은 더 잘살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하며 죽어라 공부도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가난을 벗어나려 무진 애를 씁니다. 부한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 만큼은 대단합니다. 이렇게 굶어죽지 않으려고 애쓰던 조상들의 삶이 우리 세대에 와서 이렇게 선진 대한민국으로 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이 만큼의 부를 축적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바누아투 경찰이 한국 세계 경찰 컨퍼런스에 다녀 왔는데요, 그가 하는 말 대한민국이 천국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한국을 무엇이라 평가할까요?

아뭏튼 바누아투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배를 채울 수 있습니다. 인심도 넉넉하여 먹을 것이 조금 많은 사람들은 어느 누구라도 먹을 것을 나누어 줍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잘 사는 가족은 못사는 가족을 언제든지 돌보아 주는 미덕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누아투 사람들은 죽어라 일하지 않아도 굶어 죽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똑똑한 사람이나 덜 똑똑한 사람이나 모두 배 곯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공부 잘 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바누아투에선 마찬 가지 였습니다. 단지 똑똑하고 강한 사람은 부족의 추장이 되거나 높은 지위에서 좀더 맛있는 것을 더 드셨겠지요?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평등했습니다. 그러니 죽어라 일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베짱이처럼 늘 노래 부르며 낮잠을 늘어지게 자도, 잘 살아보려고 죽어라 공부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남을 죽여야 내가 산다라는 것도 이들은 잘 모릅니다.

바누아투 사람들은 이렇게 오랜 세월 살아 왔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는 것이 어쩜 어리석을 수도 있습니다. 항상 이들은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어쩜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은 걱정거리가 전혀 없는 것일까? 그런 생각도 합니다.

친구에게 정말 걱정이 없느냐고 물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걱정이 있으면 그 날로 걱정을 털어 버린다.’ 참 큰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바누아투 사람들의 행복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것은 한국분들께서 바누아투에 이민을 와서 욕심 없이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문의를 자주하여서 입니다.

바누아투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바누아투 사람들이지 외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재차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조상대대로 먹거리 걱정 없이 편하게 살아 왔기에 지금도 그렇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외국인이 바누아투에 들어온다고 하여 그 행복이 그대로 전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분께서는 바누아투에 와서 바누아투 사람들처럼 간단하게 농사지으며 고기 잡아 먹고 그렇게 욕심 없이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입니다. 외국인은 그렇게 사실 수가 없습니다. 물론 바누아투 시민권을 취득한다면 그렇게 사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누아투에서 어떤 사업이라도 하셔야 합니다. 그 사업을 시작하기까지에는 적어도 삼천만원에서 오천만원은 이주비용과 정착비용, 사업추진 비용 등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하면 당장 바누아투에서의 행복이 시작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나라에서의 고단한 싸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리 잡힐 때까지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으로 많이도 싸워야 합니다. 그건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살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모두 겪고 나서 자리를 잡는 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바누아투 사람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바누아투에 이주함과 동시에 바누아투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사실 수는 절대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누아투도 사람사는 곳은 마찬가지 입니다. 바누아투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는 바누아투에서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합니다. 여기서도 노후를 대비한 치열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자식 뒷바라지 하려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이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그렇담 바누아투에서 욕심없이 잘 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면 한국이나 바누아투에서나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 수영장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분들이 바누아투에서 사는 집의 정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rackback : 0 And Comment : 1


제가 나경원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명예 훼손으로 고발 할 수도 있다는 정중한 이야기를 듣고 너무 무서워서 완전

하게 꼬리를 내린 후 몇달이 지난 후 이번엔 물망초5님의 기사와 관련한 글 두개가 권리침해 신고를 당하여 한달

간 제 글이 비공개로 막혀 있었습니다.

( 권리침해 기사 보기 기사 제목 : 사는게 괴롭다, 물망초5님 승소하셨습니다. - 저의 기사가 권리침해를 당할 내용이었는지 여러분들도 한번 읽어 보시고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 모기업에 대한 실명이 언급된 이미지는 삭제하였음을 양해 바라며, 이번 권리침해신고는 그 기업에게 당한 것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권리침해신고 이미지



저의 기사가 분명 문제가 있었다면 삭제는 물론 명예훼손으로 고발 당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제 글을 살펴보니 임시 삭제 조치 된 것이 해제되어, 저의 물망초5님 관련 기사는 아무 이상 없이 누

구든 보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씨는 남아 있네요.

제 기사 임시 접근 조치를 한 후 날아온 '안내 메일' 중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 단, 30일 이내에 위 게시글의 명예훼손 여부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임시조치는 해제되며,
해당 글은 복원 조치 됩니다. (복원 예정일 : 2008년 2월 15일)
(게시글로 인한 분쟁이 지속되어 임시삭제 조치의 연장이 필요할 경우에는
게시자께서 임시조치 연장을 권리침해신고센터에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게시자의 신청이 없어, 30일 이후 복원된 게시글로 인하여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 Daum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거 무서워서 기사 쓰기 힘들겠어요.

전 나름대로 상대방이 저로 인해서 피해를 입는 다면 좋지 않을 것이란 것을 생각하여, 상대방의 실명이나 업체

명을 가급적 거론하지 않고 있습니다.

권리침해 당한 기사 마찬가지로 저를 권리침해 신고한 당사자의 어떠한 이름이나 회사명도 거론한 적이 없었는

데, 권리 침해 신고를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만일 신고를 한 당사자가 이러한 글은 문제가 있으니 수정이나 삭제를 원한다며, 정중하게 요청을 해 왔다면 전

분명하게 받아 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 앞으로도 물망초5님의 일을 계속 기사화 할 것입니다.

물망초5님 관련 제 기사에 익명으로 악플을 일삼는 분이 계셨는데, 그 악플 그대로 보관하고 있으며, 그 악플에

대하여 물망초5님을 한국에 잠시 갔을때 직접만나 질문하기 정말 어려운 부분도 질문을 하였고, 물망초5님은 당

당하게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인터뷰를 통하여 밝혀 주셨습니다.

조만간 물망초5님을 오해 하시거나 잘못알고 계신 부분들을 동영상 인터뷰와 재판 승소문 및 메일 내용으로 진

실을 밝혀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고
Trackback : 0 And Comment 24
 


 

 제가 우토로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8월 19일 심샛별님의 일본 강제징용동포마을 우토로의 마지막 호소 기사를 보고 난 직후 였습니다. 그 기사는 제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토로 마을에 대해서 들어 본 것 같은 기억은 있지만 전혀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제 2차 세계 대전은 끝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저도 우토로 마을 알리기에 동참을 결심하고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로 쓴 우토로 마을 관련 기사는 ‘디워’,’피랍자’ 문제에 광분했던 네티즌들은 어디 가셨나요? 좀 유치했던 발상이었지만 그때에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몰랐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어떻게 하면 우토로 마을에 관련된 글을 많은 분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디워와 피랍자를 떠올려 블러거들에게 관심을 유발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가벼운 발상으로 쓴 기사가 빛을 볼 리 없었습니다.

그 후로 여러 블러거들이 우토로 마을 관련 기사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으며 저 역시 우토로를 알리기 위하여 효과적인 기사를 쓰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많은 애를 쓰며 집중했던 것은 외국인들의 인터뷰였습니다. 타불러거들은 정말 좋은 아이디어로 우토로 마을 알리기에 동참을 하셨지만 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외국이기에 외국인들에게 동참 호소를 하며 우토로 마을을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외국인 인터뷰 릴레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인은 우토로 마을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아래 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 프랑스인이 우토로 마을분들에게 전하는 동참 메세지  ← 원문보기클릭

   

 

두번째 : 영국인이 일본정부, 한국정부에게 고한다.  (특종) ← 원문보기클릭

                                                                      

 

 세번째 : 아름다운 호주 아가씨도 동참 합니다.   ← 원문보기클릭

 

                                                                 

 

 네번째 : 브라질 쌈바도 우토로 희망 릴레이에 동참합니다.   ← 원문보기클릭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서 인터넷을 통한 우토로 마을 검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우토로 마을에 관련된 글을 썼나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 우토로에 다녀온 대학생을 알게 되어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저금통을 털어 우토로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학생(감사합니다.특종)들을 알게 되어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음과 네이버에서는 나름대로 많은 분들이 활동을 하시면서 우토로 마을을 알리는데 동참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고, 다른 포털 사이트에서도 우토로 마을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검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 싸이를 좀 해보았기에 좀 친숙한 cyworld.com 으로 발길을 돌려 우토로 마을을 검색 해 보았습니다. 그때가 9월 초순경이었습니다.

! 이럴 수가… 

싸이에서는 우토로에 관심이 거의 없었습니다. 기사를 제외한 미니홈피나 클럽등에서 우토로에 관련된 글 네군데를 찾았었는데 그것도 다음이나 신문기사를 스크랩하여 올린 정도 였습니다.

그래서 전 그때부터 싸이에 우토로 마을을 알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클럽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클럽을 만들어 그동안 쓴 기사들을 스크랩하며 올려 놓고 그 글을 싸이에 게시하기 시작하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번 와! 이럴수가….

 


반응이 너무 냉정하다는 것입니다. 도대체가 글을 읽으려 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분명 싸이는 미니홈피를 통해서 수많은 분들이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우토로 마을을 이슈화 시킨다면 분명 더 많은 분들이 우토로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래서 싸이에 이슈화를 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러 많은 시간을 싸이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방법을 찾아 내었습니다. 싸이에서는 도토리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많은 영리 사업체들이 자사 홍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힌트를 얻어 제가 전에 만들어 놓았던 바누아투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았던 타운을 재탄생을 시키게 되었습니다.그 타운에 남태평양 희망본부를 만들어 놓고 도토리 이벤트를 열러 우토로 마을을 알리는데 필요한 희망이를 모집하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도토리 이벤트를 열어 희망이를 모집하려면 도토리를 사야 하는데 한국에 통장이 없는 전 도토리 사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전부터 우토로 관련 기사가 ?종상을 받아 다음 캐쉬를 받게 된다면 우토로 마을을 위하여 쓰겠다는 다짐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다행이도 제가 우토로 관련 기사 쓴 두개의 기사가 특종 기사와 감사합니다 특종에 뽑혀 사십만원이라는 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특종은 아직 받지 못한 상태이구요.)

그 돈으로 도토리를 사면 되겠지만 다음 캐쉬를 현금화 하지 못한다는 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국에 제 통장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전 제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중년에 들어선 친구들이 도토리를 구매해서 선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한 친구는 ‘도토리? 너  한국에 나오면 도토리 한가마니 사줄 테니까 어여 한국으로 들어와라.’그럽디자.

더 이상 바랄게 없었고, 제 기사에 다음캐쉬로 십만원어치 필요한 물건을 사서 택배를 보내 줄 테니 제게 도토리를 십만원어치 구매를 해달라는 기사까지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운좋게도 한분은 무상으로 도토리 1,000개 지원을 약속해 주셨고, 다른 한분은 다른 방법으로 도토리를 사주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사정인지 도토리가 입금이 되지 않고 있답니다.

하지만 전부터 알마님이 도토리가 구입이 안된다면 직접 도움을 주겠다고 여러 차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구할 수 있는데 까지 구해 보고 정 안되면 부탁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 시한이 저번주 수요일이었답니다. 그때까지 전 도토리를 마련하지 못했답니다. 알마님에게 부탁을 하여야 하는데 먼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알마님이 먼저 제가 물어 오시더군요. 도토리 어떻게 되었느냐구요. 전 용기를 내어 구입을 못하였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 다음날 도토리 1,000개를 선물했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사실 눈물이 쬐금 났습니다. 너무 고마워서요.

 


알마님 블로그 주소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351902

 

그래서 부랴부랴 어제부로 싸이 우토로 희망 본부 타운에서 이벤트를 시작하여 희망이를 모집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벤트를 시작하고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한명도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으면 저를 믿고 밀어준 알마님을 어떻게 대하지? 라는 생각에 잠까지 설쳐답니다.

조금전에(9월 23일 오후 8시, 한국시간) 확인해 본 결과 이벤트에 참여한 인원이  33명이 되었고 일촌은 40명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태평양 우토로 희망 본부  http://town.cyworld.com/bluepango

 

 물론 많은 숫자는 분명 아닙니다. 이제 싸이에서도 많은 분들에게 알릴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에 전 너무 기뻐 다시한번 눈물 쬐끔 흘렸구요, 알마님에게 조금이나마 보답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도토리 수가 1,000개는 이벤트를 진행하기에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물론 알마님이 선물해 주신 천개의 도토리는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도토리입니다.)

아직 제게, 감사합니다 특종상금 받지 못한 삼십만원이 남아 있습니다. 그 돈이면 도토리를 삼천개 구입할 수 있구요, 그 삼천개면 이벤트를 더 대대적으로 확대를 하여 많은 희망이를 모집할 수 있으며 우토로 마을을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릴 수 있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통장이 없기에 현금으로 지급되는 감사합니다 특종상금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저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전 다음 캐쉬 담당자님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드립니다.

우토로 희망 본부 타운에 '감사합니다' 특종 상금을 도토리로 입금을 시켜주세요. 분명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한국엔 제 통장이 없습니다.

이건 제 개인을 위해서 쓰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토로 마을을 위하여 그 돈을 보람있는 곳에 쓰고 싶습니다.

물론 제 특종 상금을 우토로 마을에 성금을 할 수도 있지만, 전 그 돈으로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 우토로 마을에 더 많은 관심을 유도 시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그 삼십만원의 돈 정말 값어치 있게 쓰여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글을 다음 캐쉬 담당자님께서 보신 다면 방법을 강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싸이에서 우토로 마을 돕기 이벤트를 열 수 있도록 도토리 1,000개를 선물해 주신 알마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
신고
Trackback : 0 And Comment : 0




 아가씨 혼자서 전기, 수도도 없는 남태평양 한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섬나라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민정선, 나이는? 싱글입니다.

작년 초 American Peace Corp 보건 담당 자격으로 바누아투에 입국하였습니다.

자원봉사를 하기 위함입니다.

이곳에 있는 한인들은 모두 반기긴 하였지만 위험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너무 잘하고 있고 그곳 섬에서도 원주민들이 너무 좋아하고 있답니다.

민정선씨는  Tangos 섬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섬에서 보건기관들의 시설을 구축하고 보강하는

일을 맏고 있답니다.


민정선양

 

 통오아 보건소 직원들과 그녀의 사무실

민정선양의 집

바누아투 전통집에서 전통 문양의 천으로 실내를 예쁘게 꾸며 놓았습니다.

민정선씨를 곁에서 도와주고 있는 가족들...


민정선씨의 부엌, 직접 장작을 패고 불을 지펴 음식과 물을 끓여 마십니다.

지금은 완전히 선수가 되어 불편함이 없을 정도랍니다.


통오아의 유일한 가족 넘버4 (고양이 이름)


 지금부터 민정선양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시겠습니다.

신고
Trackback : 0 And Comment : 1

중국측은 한국 선박에서 일어난 일이니 관계없다, 한국측은 중국 국적이니 관계없다  - 조선족 가족의 애타는 사연 중 일부.

소말리아에 피랍된 선원들이 174일만에 전원 석방되고, 어제 오후 전원 무사하게 도착한 것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동안 고생해 주신 소선모 관계자 여러분들과 부산 시민 여러분들, 그리고 관련 보도 열심히 취재 해주신 분들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여러분들께서는 피랍된 선원들중에 조선족이 몇명이나 있었는지 아시는지요. 그리고 그 조선족들이 중국에서 가족들의 생사를 몰라 174여일 동안 얼마나 고통 속에서 살았는지 아시는지요. 한국 선원들은 소선모와 부산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가까운 곳에서 최신 정보를 받으며, 많은 분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희망을 갖고 살았지만 조선족 동포들은 어렵사리 한국 뉴스를 통해서만 남편이나 아빠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부분 언론에서 쓴 기사를 보면요 한국 선원 4명외, 아니면 한국 선원 4명, 중국 등 다른나라 선원들 정도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전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요
  피랍된 한국인 선원 4명해양 수산부 장관 방문(쿠키뉴스), 석방된 선원은  한국인 4명과, 중국인 10명, 베트남인 3명, 인도네시아인 4명, 인도인 3명 등 모두 24명 (SBS뉴스),  한국인 선원 4명을 포함해 전원 석방  (KBS뉴스) 등등등... 이렇듯 대부분의 신문에서 조선족에 관련된 기사는 찾아 보기가 힘들 정도로 보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소말리아에서 피랍된 어부들이 예멘에 도착했다는 보도를 보아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관련기사 피랍 마부노 호 예멘 도착!  
.
제가 소말리아 피랍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인터넷을 검색하던중(10월 12일경)
소말리아 피랍 선원을 위한 시민 모임이라는 사이트  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피랍된 선원들중 한국인 선원외에 조선족 동포 10여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족 동포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해 보려고 몇번을 접촉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도 얼마전 제 블로그에 자주 찾아 주시는 메이데이님이 중국에 살고 계신다고 하여 혹시나 하고 전화번호를 알려 드리고 연락을 부탁 드렸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한달만에서야 어제 메일 인터뷰 답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메이데이님이 조선족 권선생에게 몇번을 전화 통화를 하고 메세지를 남기고, 한 후에 연락이 닿았답니다. 조선족 권영애씨하고 어제 이루어진 인터뷰 내용을 보시겠습니다.(11월 13일자)


Bluepango :  안녕하세요? 다음 블로거 기자 블루팡오라고 합니다. 간단한 본인 소개와 중국 조선족 선원 몇 분이 피랍되었는지 말씀해 주시고요,가족이 피랍된 사실을 언제 아셨는지요


권영애(피랍자조선족가족) : 저는 지난 5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었던 마부노호 중국 국적 선원 노성남의 아내 권영애입니다. 함께 타고 있던 중국 국적 선원으로는 엄태국, 김영암, 김홍암, 신동훈이 있습니다. 모두 조선족들입니다.


5월 중순에 중국 사람도 타고 있는 한국 어선이 소말리아에서 납치됐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정확한 소식은 알 수 없었습니다. 중국 사람이 3명 타고 있다고 하는 뉴스도 있었고 10명이 있다는 뉴스도 있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아직도 정확한 소식을 모릅니다. 저는 5월 7일에 남편과 통화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케냐에서 예멘으로 가는 길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서 혹시 남편이 탄 배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무도 확인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6월3일 창춘(長春)에 있는 인력송출회사로부터 남편이 해적에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잘 처리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주 희망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모든 것을 팽개치고 남편 소식을 알기 위해 매달렸습니다. !


그뒤로 모든 소식은 한국 뉴스를 통해서 들었을 뿐입니다. 누가 알려주고 하는 법은 없었습니다. 듣기로는 10명이라고 하는데 제가 아는 분들은 남편을 포함하여 같은 인력송출회사를 통해 나갔던 5명입니다. 



Bluepango : 피랍된지 174여일 만에 석방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애통해 하신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텐데요, 혹시 가족의 석방을 위해서  어떠한 조치들을 취하셨나요?

권영애(피랍자조선족가족) : 중국 사람으로 한국 사람이 소유한 원양어선을 탔기 때문에 중국 측 관련 기관과 한국 측 관련 기관에 모두 사정을 설명해 봤습니다. 그러나 아무 데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중국 측에서는 한국 선박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그쪽에서 달라는 대로 돈을 지불하면 해결될 일이 아니냐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습니다. 한국 측에서는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들의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습니다.

사실 해적에게 잡힐 줄 알았으면 누군들 그 길을 택해 나갔겠습니까? 설마 이런 일이 발생!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도무지 가닥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돈 문제가 해결되면 남편이 해적들에게서 풀려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저는 답답한 마음에 한국에 들어가서 사정이라도 자세히 알아보고자 심양 주재 한국 영사관에 가서 한국가는 비자를 내려고 했더니 한국 법무부의 허락을 받아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가서 한국 선원분들의 가족들과 함께 행동하고 싶었지만 결국 한국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단동 인민정부나 심양 인민정부의 외사처 몇 번이나 문을 두드려 봤지만 듣는 대답은 언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문제는 사람들을 잡고 있는 측에다 돈을 주면 해결되는 문제이지 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안건 자체를 접수시키는 절차가 얼마나 복잡했는지 모릅니다.

모든 소문들은 한국 측 뉴스를 통해서만 전해 들을 수 있었지 이 일에 책임이 있는 쪽의 누구 하나 직접 알려준 적이 없었습니다. 길림성 장춘에 있는 인력송출회사에다 우리 쪽에서 진행 중인 사실을 알려달라고 죽으라고 사정하고 요구하면 겨우 뉴스에 나온 이야기들을 짧게 전해줄 뿐이었습니다.


Bluepango : 피랍된분들이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가셨을텐데요, 그분들이 계시지 않아 많이 힘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가족들은 그동안 어떻게 생활을 하셨나요? 혹시 정부라던가 시민 단체등에서 성금 전달 받으신적은 있으신지요.(이런 질문 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한국에 계시는 많은 분들이 정확한 사실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족분들의 아픈 사연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답니다.)


권영애(피랍자조선족가족) : 성금은 받은 적이 없습니다. 5월부터는 장춘의 그 취업알선회사로부터 받던 생활비도 끊어졌습니다. 고향인 동항(인천에서 페리가 다님)에서는 도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14살짜리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그렇게 된 소식을 숨긴 채, 단동 친구 집에 와서 기숙하며 친구의 도움으로 컴퓨터 다루는 법을 배워 한국에서 나오는 소식들을 들으며 견디고 있습니다. 장춘의 인력송출회사는 전혀 알려 주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의 선주나 인력송출회사 쪽!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해도 무슨 큰 비밀이라도 되는지 상부 지시 운운하며 절대 알려주지 않습니다. 말로는 저희 남편 고용 계약 기간이 내년 4월까지라는데 이번에 살아돌아온 뒤에 남은 기한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그것도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아들아이가 아버지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옆에 없다 보니 더욱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오로지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잘 봐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Bluepango : 한국에 계시는 피랍자 가족들은 많은 부산 시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속에서 그나마 위로를 받으며 힘이 되어주셨는데요, 혹시 조선족 피랍자 가족분들에게 힘이 되어 주신 분들이라도 계셨는지요.


권영애(피랍자조선족가족) :  예컨대 심양 주재 한국 영사관 같은 데를 가려고 해도 한국분의 도움이 없으면 문을 두드리기도 힘이 드는 형편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친구 남편인 김주만 선생님이 이런 일들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정말 많이 답답했을 것입니다. 가장 고마운 분입니다. 그리고 나 몰라라 할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저희들 중국 선원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신 수많은 한국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지난 5일에 남편과 한번 통화가 되었었습니다. 몸이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집에 가서 보자고 했습니다. 길게 통화도 못했습니다. 그 뒤로 또 아무런 소식도 못 들었는데 오늘 한국 뉴스에 난 것을 보니 오후 4시에 예멘으로 도착한다고 합니다. 예멘에 도착하면 다시 통화가 가능할런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인 가족들은 예멘까지 가서 가족을 상봉할 수 있지만 저희들은 예멘은커녕 한국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를 어디다 호소해야 좋을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돌아오면 다시는 배를 타지 못하도록 말려야겠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선원으로 일한 사람이라 뭐라고 대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인터뷰를 읽어 보시고 언듯 어떠한 생각이 드셨나요?
조선족은 우리 민족 아닌가요? 중국 국적을 가졌다고 해서 한국에서 나몰라라 해도 되는 건가요?
제가 조선족이 중국 국적을 취득한 과정이 궁금하여 메이데이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자의적으로 취득을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연이 있는지를요. 그리고 메이데이님에게 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조선에서 간도로 넘어가서 살기 시작했지 않습니까? (현재 중국 땅, 그때도 청나라 땅이었을 겁니다. 1712년 조선 숙종 때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그 이북은 청 나라 땅으로 인정해 주었다고 하니까요)

그 뒤로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자 더 많은 사람들이 간도로 갔을 것입니다. 독립운동가들도 있었을 것이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러 간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1931년 이후 간도 지방을 점령했던 일본이 2차 대전에 패망하면서 이 지역은 소련군이 점령됩니다. 그런 뒤에 이 지역은 물론 전 중국 영토가 곧바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1949년 10월 1일 공산당 정부가 성립되면서 간도 지방의 조선 사람들을 중국 소수민족, 곧 중국 시민으로 편입시켰습니다. 그러나 산해관(만리장성이 시작하는 곳, 하북성에 있습니다. 북경이 이 산해관의 남쪽에 있습니다.) 이남에 거주하던 조선 사람들은 북한 국적을 취득하여 재중국 북한 교포(조교라고 합니다)가 되었습니다. 1948년에 북한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간도 지방은 이미 중국 영토였고 내전 중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조선 사람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 사람으로 오인받아 소련군 포로가 되기도 했답니다. 고향인 한반도로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그러나 간도 지방에 살던 조선 사람들과 후손들은 위에서 말한 대로 중국 시민이 되어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자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말입니다.

권영애 선생님은 고향이 경상북도 안동이며 아버지 때 간도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예멘에 선원들이 도착했다는 뉴스만 들었지 아직 통화가 되지 않고 있어서 언제 집으로 돌아오는지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답니다.


 정말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우토로 마을 주민들은 그나마 일본 국적을 취득을 하지 않아서 재외 동포로 인정을 해주고,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이 무조건 중국시민으로 편입된 조선족들은 우리 동포가 아니란 말입니까?
대한민국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집행이사회 이사국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진국입니다. 그러한 대한민국이 어찌하여 우리의 동포 조선족를 이렇게 외면하는 것입니까?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



2007/10/16 - [소말리아피랍자] - "차라리 죽여달라"



촛불 배너 제작 love lamp





 

신고
Trackback : 0 And Comment : 0
 

네번째 외국인 인터뷰 주인공은 브라질에서 온 젊은 커플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Adrinancastro와 Vinicius이구요.

두분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기 전에 바누아투로 여행을 온 사람들입니다.

그 두분을 만나고 우토로 마을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인터뷰 신청을 하였습니다.

브라질로 떠나기 전날 잠시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럼 그들의 메시지를 들어 보시겠습니다.

 

   번역은 브라질에 계신 ssamba님이 해주셨습니다. http://blog.daum.net/oionda

인터뷰 내용 원문 그대로 옮깁니다.


"Adrinancastro양 : 우토로 마을 주민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에, 이 우토로 돕기 활동에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습니다.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 우토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처한 현실을 자세히 보고 그들을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Vinicius군 : 저는 브라질에서 온 브라질 사람 비니시오입니다. 한국정부와 일본정부는 먼저 에고이스트적인 생각과 행동을 버려야합니다.
모든 민주국가의 힘은 국민에게서 오는 것이므로, 모든 국민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우토로에도 평화가 오기를 바랍니다."


이들도 브라질에 돌아가면 자기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많이 동참시키겠다고 약속을 하며 떠났습니다. 부디 좋은 일자리를 찾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외국인 인터뷰 다시 보기]

첫번째 : 프랑스인이 우토로 마을분들에게 전하는 동참 메세지  ← 원문보기클릭

              

두번째 : 영국인이 일본정부, 한국정부에게 고한다.   ← 원문보기클릭

세번째 : 아름다운 호주 아가씨도 동참 합니다.   ← 원문보기클릭

      

                                   

아래 주소는 우토로에 희망을 연대 카페입니다.

 Daum        우토로에 희망을       http://cafe.daum.net/hope4utoro     

 Naver    우토로에 희망을    http://cafe.naver.com/utoro         

 Cyworld  우토로에 희망   http://club.cyworld.com/hopeutoro     

 Cyworld  남태평양 우토로 희망 본부  

                            http://town.cyworld.com/bluepango 

 

 [우토로 마을에 대하여 세부적으로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주소를 클릭해 보기바란다.]

      우토로 마을의 역사 스페셜 http://blog.daum.net/arma2017/4949972 


우토로 마을을 도우려면...

1. 우토로 홈페이지 방문하기 - 우토로 국제대책회의 사이트 바로가기
2. 도움이 필요한 우토로 마을의 상황을 포스팅하거나 퍼가서 이슈화 시키기!
3. 우토로 마을 지키기 배너달기 - 배너달기 바로가기
4. 마음 나누기!
 · 아름다운 재단 무통장 입금 (하나은행 162-910006-81704 / 국민은행 006001-04-091586)
   예금주:아름다운재단
 · 아름다운 재단 홈페이지에서 신용카드 휴대폰 송금 바로가기


신고
Trackback : 0 And Comment : 0

 바누아투로 자원 봉사를 온 Doctor Alexandra Blaise Balmer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호주의 Blaise Social Inquire 회사에 다니고 있는 변호사이며 이번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번에 바누아투에 온것은 바누아투 정부에 무엇을 도와 줄 수 있을 것인지 계획서를 입안하러 일주일간 방문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어 utoro.net에서 발췌한 자료를 건네주고 읽어봐 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많이 망설였지만 신중하게 글을 읽어 보더니 인터뷰애 응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쑥스럽다며 메세지만 전달하겠다는 의향을 전해 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전 꼭 힘드시더라도 간단한 내용도 좋으니 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하였고, 알렉산드라는 카메라 앞에 섰답니다.

 그녀는 이말씀을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카메라 앞에서 글을 읽으며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지만 자신이 너무 부끄러움을 많이 타기에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 말에 참으로 아름다운 여성이다라는 생각을 학게 되었습니다.

 그럼 어떠한 메세지를 우리들에게 주는지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다.

    


위의 번역은 케이프타운에서 심샛별님이 해주셨습니다.   http://blog.daum.net/gniang 


 Doctor Alexandra Blaise Balme r의 메세지

"이 분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셔야 합니다.

아직도 과거사로 고통 받고 있는 우토로 마을 주민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은

양국 정부가 그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나서야 합니다.

우리 모두 평화와 상호이해를 위해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Daum    우토로 마을에 희망을    http://cafe.daum.net/hope4utoro

Naver    우토로 마을에 희망을    http://cafe.naver.com/utoro


           "우토로의 희망을"

아고라 청원 바로가기 (10만인 서명을 향해 출발~)

아름다운 재단 홈페이지에서 신용카드 휴대폰 송금 바로가기

♥ 아름다운 재단 무통장 입금
      하나은행 162-910006-81704 / 국민은행 006001-04-091586 (예금주:아름다운재단)


 

 플래시 만든이 : love lamp

2007/10/06 - [우토로/인터뷰] - 영국인이 한•일 정부에 쓴소리 하다.
2007/10/05 - [우토로] - 프랑스인 우토로에 희망메세지 보내다
신고
Trackback : 0 And Comment : 0

 우토로 마을에 관련된 이야기를 국제적인 이슈화를 만들기 위해 아주 조그마한 일환으로 외국인들과 접촉하며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영국인 인터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이름은 Mr. Remi Ajetunmdbi 입니다.

레미씨를 처음 만나 우토로 마을 관련 자료를 보여 주며, 인터뷰 의향을 물어보았을때 일단 서류를 검토하고 이야기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이튿날 레미씨는 기꺼이 응하겠다며 인터뷰에 긍적적인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레미씨는 우토로 마을은 상당히 중요한 사항이기에 자기의 생각을 잘 적어서 인터뷰에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하는 동안 자기가 적어온 메세지를 읽으며 말씀을 하느라 매끄럽게 말을 하지 못한점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레미씨는 영국에 사는 자기 친구들에게도 우토로 마을에 관한 사실을 알려 국제 사회에서도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겠다며 동참을 약속하셨섭니다.

그럼, 레미씨가 우토로 마을 주민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메세지와 일본 정부 및 한국 정부에게 드리는 메세지를 들어 보시겠습니다.

 
 

 레미씨와의 인터뷰 내용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계시는 심샛별님께서 번역을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동영상을 보시기 힘든 분들을 위해 인터뷰 내용 전문을 옮김니다.

우토로 주민 여러분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저의 이름은 레미이고 지금 바누아투 뉴질래드 하이커미션(고등판무관)앞에 있고,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처한 상황을 들었습니다.
무척 슬펐습니다.
지난 65년간 여러분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 남기 위해 투쟁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이 노력해서 겨우 일궈온 터전을 빼앗기게 되셨군요.

이렇게 오랫동안 해결이 안되고, 끌어왔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 권리를 무시하는 불명예이며, 정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부디 인내를 갖고 이겨내십시오. 그리고 늘 희망을 잃지 마세요.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의 상황을 알게 될 것입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할 수 있지만, 여러분은 어려움을 이겨낸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협력하고 존중함으로써, 정신적으로는 부자입니다. 진정한 인간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희망을 가지십시오.
말로 하기는 쉽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영국에서 살고 있으며, 나름 피부색이 어둡다는 이유로 유럽에서 많은 불평등과 차별을 받아봐서 여러분이 겪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사랑을 계속 간직하십시요.

힘을 잃지 않는다면 전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될 것이고,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진심과 사랑이 우토로 주민 모두께 전해지길 바라며,
사랑과 평화와 단결….잊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또한 일본과 한국 정부에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토로를 위한 행동에 나설 계획이 있습니까?

양국 정부는 명예를 선택할 것입니까? 아니면 불명예를 선택할 것입니까?
국민들은 말을 가지고 국가권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을 보고 선택합니다.
양국 정부 당국자 여러분, 행동에 나설 것입니까?
공평하고 명예를 아는 두 나라, 잘 사는 두 나라잖습니까?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파괴의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원조로 오늘날의 경제 대국을 건설하는 기초를 삼았습니다.
그 자본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일본도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에도 마음이 있습니까?
왜 이렇게 냉정하게 보이는 것입니까?
우토로를 돕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행동에 나서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정부에도 한 말씀 드리자면,
왜 자국의 국민을 돌보지 않는 것입니까?
국내에 있건 해외에 있건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입니다.
국민들을 이러한 상태로 남겨 두는 것은 불명예입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서로 사랑하고 화합합시다!

                            2007/10/05 - [우토로] - 프랑스인 우토로에 희망메세지 보내다

1. 우토로 홈페이지 방문하기 - 우토로 국제대책회의 사이트 바로가기
2. 도움이 필요한 우토로 마을의 상황을 포스팅하거나 퍼가서 이슈화 시키기!
3. 우토로 마을 지키기 배너달기 - 배너달기 바로가기
4. 마음 나누기!
 · 아름다운 재단 무통장 입금 (하나은행 162-910006-81704 / 국민은행 006001-04-091586)
   예금주:아름다운재단
 · 아름다운 재단 홈페이지에서 신용카드 휴대폰 송금 바로가기 

신고
Trackback : 0 And Comment : 0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바누아투에서 제가 우토로 마을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저 다른 블러거님들의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해 드리는거 말고 직접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좀체로 방법이 떠로으지를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곳은 외국인들이 많이 사니 외국인들에게 우토로 마을에 대한 현실을 알려주고, 그 분들에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것도 알리고, 우토로 마을 주민들의 어려움을 알려 주어 외국인들이 우토로 마을 주민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기에 이르렀답니다.

그래서 삼일전부너 외국인들에게 인터뷰 접촉을 했습니다만 쉽지는 안더군요. 처음엔 무작정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좀 의아해 하더군요. 그래서 다음번엔 우토로넷 사이트에 들어가 영문으로 된 자료를 프린팅 해서 들고 다니며 인터뷰 협조를 구했더니, 흔쾌히 승락을 해주셨습니다.

첫번째 인터뷰 해주실 분 이름은 찰스이며 포트빌라 프랑스 학교 교사로 재직중입니다.


신고
Trackback : 0 And Comment : 0

티스토리 툴바